취미/독서

풀잎관 / 콜린 매컬로

이 기사 2022. 1. 14. 16:08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제 1 장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법무관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누미디아에서 유구르타를 생포했던 일이나, 갈리아에서의 활약을 생각하면 술라의 당선은 당연해 보였지만, 원로원 최고참 의원인 스카우루스가 선거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당시 스카우루스는 아들이 죽자 아들의 정혼자였던 달마티카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달마티카가 술라에게 반하여 술라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술라는 나름대로 훌륭하게 처신하였으나, 스카우루스는 큰 스캔들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술라에게 로마를 잠시 떠나줄 것을 요구한다. 술라는 이 요구를 거부하고 법무관에 출마하였으나, 아직 스카우루스의 영향력이 큰 상태였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난 마리우스는 휴양 겸 소아시아의 정세도 직접 확인할 겸 가족들과 함께 페시노스로 향한다. 그들은 이탈리아 반도 끝에 있는 도시인 타렌툼에 가서 배를 타고 그리스 남부의 파트라이로 향했다. 올림피아를 여행한 마리우스 일행은 에페소스를 거쳐 할리카르나소스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마이안드로스 강 유역을 따라 난 길을 통해 페시노스로 갔다.

  마리우스가 먼 길을 떠난 것은 소아시아에서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있는 폰토스의 왕 미트리다테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미트리다테스는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을 한 젊은 왕이다. 미트리다테스가 9살 때, 어머니인 라오디케 왕비가 모반을 일으켜 남편인 왕을 살해하고 열한 살이었던 형 미트리다테스 크레스토스를 새로운 왕으로 만들었다. 미트리다테스는 어머니가 자신도 죽일 거라는 불안감에 왕궁에서 도망쳐 폰토스 동부의 산 속으로 숨어 그곳 주민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났다. 아버지가 독살 당했기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모든 종류의 독에 대해 스스로를 노출시킴으로써 독에 대한 면역성을 길렀다. 열일곱 살의 장성한 사내가 된 미트리다테스는 어머니와 형으로부터 왕위를 뺏는다. 이후 미트리다테스는 폰토스를 대제국으로 부상시킬 야망을 갖고 근처의 독립 왕국들부터 정복 전쟁을 시작한다. 마리우스가 미트리다테스와 만난 때는 이미 카파도키아와 갈라티아를 정복하고 로마의 속주인 비티니아까지 차지하려는 참이었다.

  한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렐리아는 슬하에 2녀 1남을 두고 있었는데, 막내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려서부터 영특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외삼촌인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의 도움을 받아 아주 똑똑한 가정 교사를 붙여 주게 되고, 어린 카이사르는 점점 더 총명하게 자라난다.

  마리우스가 똥돼지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는 마리우스가 주도한 토지법에 반대하며 스스로 거액의 벌금을 내고 추방당했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아들의 노력으로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 악법에 저항하여 보인 그의 행동이 대중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술라는 누미디쿠스를 찾아가 저녁 식사를 하다가 몰래 잔에 약을 타 누미디쿠스를 독살한다. 누미디쿠스는 술라의 손을 꼭 잡은 채 죽어 갔고, 이 일로 술라와 누미디쿠스의 아들 메텔루스 피우스와의 관계는 아주 돈독해진다.

  마리우스는 오랜 여행 끝에 드디어 카파도키아의 수도인 마자카에서 미트리다테스와 만난다. 마리우스는 더이상 소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만들지 말고 군대를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한다. 미트리다테스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도발을 하기에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미트리다테스는 철군을 하고 마리우스도 로마로 돌아온다.

제 2 장

  드루수스와 카이피오는 절친한 친구이자, 서로의 여동생과 결혼한 처남이자 매제 지간이었다. 카이피오는 로마를 떠나 갈리아로 군수품 사업을 하러 떠났는데, 이 때 아버지와 오빠, 남편의 통제 아래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했던 카이피오의 부인 리비아는 시골에 있는 작은 별장으로 거처를 옮겨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로 한다. 그런데 거기에서 운명처럼 처녀 때 창문 틈으로 짝사랑했던 (그리고 이제는 유부남이 된) 카토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임신까지 하게 된다. 이런 일탈은 1~2년 후 카이피오가 로마로 돌아오면서 끝이 나고 카이피오와 리비아의 결혼 생활도 마침내 파국을 맞이한다.
  카이피오와 리비아에게는 원래 두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세르빌리아 카이피오니스였다. 세르빌리아는 어린 나이임에도 정신적으로 조숙하였고 아버지를 잘 따랐는데, 부모 관계가 벌어지면서 점점 더 어머니를 경멸하고 아버지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카이피오는 세르빌리아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세르빌리아는 드루수스 집 안의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카이피오는 카토의 집에도 불륜 사실을 통보하여 카토도 아내에게 이혼을 당하였고, 결국 리비아와 함께 드루수스의 집에 머무는 신세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새 남편으로 맞이하여 리비아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나, 드루수스 집은 비극을 맞이한다. 드루수스의 부인 세르빌리아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리비아도 넷째 아이 출산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
  드루수스는 동생이 죽기 전에 아주 오래전 아버지와 이혼하면서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찾아가서 동생의 죽음을 지켜달라고 한다. 어머니 코르넬리아 스키피오니스는 죽은 어머니들인 세르빌리아와 리비아 대신 드루수스의 집에 남아 여섯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한다.

  이 당시 로마에서는 새로운 집정관들이 취임하면서 전면적인 (로마인) 인구 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했었는데, 이 때를 틈타 로마의 동맹시들에서 이탈리아인들이 대거 로마인으로 등록을 시도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마 원로원에서는 여러 동맹시 지역에 조사 법정을 세워 신규 등록자들을 조사하여 거짓으로 등록한 것이 밝혀질 경우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로마의 차별을 견디기가 어려워한 동맹시 지도자들은 서로 연맹하여 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 3 장

  술라는 법무관 낙선 이후 히스파니아에 총독 보좌관으로 갔다가 돌아온다. 스카우루스도 달마티카에게 아이를 얻고 술라에 대한 적의가 덜해진 상태라서, 술라는 이번에는 쉽게 수석 법무관으로 당선된다. 법무관 임기가 끝날 즈음, 마침내 소아시아 전체를 손에 넣으려고 움직인 미트리다테스를 저지하기 위해 소아시아로 출군한다.
  카파도키아의 술라의 진지에서 술라와 미트리다테스는 회담을 한다. 술라는 폰토스 왕에게 정중하지만 강력하게 카파도키아에서 철군할 것을 명령하였고, 미트리다테스는 또 한번 로마인에게 굴복하고 철수를 하게 된다.

  술라는 내친 김에 아르메니아 제우그마의 에우프라테스 강변까지 행군하여, 파르티아의 대표단 입회 아래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왕과 협정을 맺는다. 바로 에우프라테스 강을 기준으로 강 동쪽은 아르메니아의 소관으로 하되, 강 서쪽은 로마의 소관으로 침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술라는 성공적으로 조약을 체결하였고, 특히 조약을 맺는 중에 유명한 점술가로 하여금 술라에 대해 점치게 하였는데 그 점술가가, "술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고, 술라가 살아 있는 동안 술라에게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는 점괘를 얘기하여 크게 만족하였다.

  루푸스는 인구 조사를 할 때 속주들의 사정을 많이 봐줬다는 이유로, 즉 로마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기소되어 스미르나로 추방당한다.

 

제 4 장

  이탈리아인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문제로 로마와 이탈리아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는 전운이 감돈다. 드루수스는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호민관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드루수스는 본격적으로 시민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는 대신에, 먼저 토지법, 곡물법 등 여러 진보적인 법들부터 제안하여 통과시킨다. 그 해 9월, 드루수스는 마침내 시민권법에 대한 안건을 상정한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는다면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고 경고하였으나 원로원의 여러 의원들은 전쟁 위협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시민권을 둘러싸고 개혁파와 보수파로 나뉘어 점점 갈등이 고조되던 중, 보수파 의원 필리푸스는 드루수스의 법들이 적합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모든 법을 파기할 것을 제안하고 결국 표결 끝에 드루수스의 법들은 모두 파기된다. 드루수스는 호민관으로서, 파기하는 안을 거부할 적합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드루수스는 보수파들의 이런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시민권법을 끝까지 추진하지만, 시민권법이 표결이 되기 전 날, 어떤 암살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드루수스의 마지막 말은 "누가 나처럼 우리 공화국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였다.

 

제 5 장

  드루수스가 죽자 이탈리아의 여러 부족들은 연합하여 신생국 이탈리아를 선포하고 로마와의 전쟁을 준비한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로마인들에 대한 증오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던 때였다. 마침 소위 '이탈리아 문제' 를 조사하기 위하여 법무관 퀸투스 세르빌리우스는 아스쿨룸 피켄툼을 지나고 있었다. 법무관 방문 기념으로 여러 사람을 초청하여 연극이 공연되었는데, 이탈리아 배우로부터 시작된 조그만 일탈은 엄청난 학살극으로 변모되어 도시안의 모든 로마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남쪽으로 조사하러 떠났던 법무관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도 놀라라는 도시에서 6주간 감금되어 있었다가 겨우 탈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로마는 마침내 이탈리아와의 전쟁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군대 편성 및 배치, 재원 마련 등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다. 술라는 이 논의에서 전쟁 계획에 대한 훌륭한 의견을 발표했고 이 일로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개전 초기 전세는 로마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간다. 집정관 루틸리우스 루푸스, 톨로사의 황금을 훔친 카이피오의 아들 카이피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등 여러 고위 공직자가 전사하고 병력 손실도 매우 컸다. 하지만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의 활약으로 인해 형세의 반전을 맞을 시점에, 마리우스는 뇌졸중에 걸려 로마로 호송된다.

 

제 6 장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17번째 생일을 맞아 군에 입대한다. 뛰어난 지성과 다르게 군사 훈련에서는 고문관 역할을 도맡아 하였다. 키케로는 폼페이우스 스트라보의 군에 배속되어 몇몇 전투에 참여한다. 스트라보의 아들인 폼페이우스 2세와 친구가 된 키케로는 그의 배려로 나름대로 편안한 군생활을 하게 된다.
  마리우스는 집에서 요양하며 몸을 점점 회복한다. 어린 카이사르는 고모부의 집에서 수발을 들며 이야기 상대가 되어 준다. 카이사르는 마리우스의 거동을 도와주며 그 보답으로 군사 교육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마리우스의 아들이 군대에서 상관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리우스는 어린 카이사르, 데쿠미우스와 함께 해당 군대로 찾아가게 되고, 유일한 목격자를 사고로 위장하여 살해한다.

 

제 7 장

  술라는 남부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삼니움 족과 맞서 큰 승리를 거둔다. 그의 부하들은 큰 승리를 기념하며 술라에게 풀잎관을 만들어 씌워 준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도 아스쿨룸 피켄툼을 탈환한다. 동맹시 전쟁은 거의 끝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술라는 자기 친구이자 사돈이 된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와 함께 집정관에 당선된다. 술라의 취임식에서 술라는 여러 감정에 사로잡혀 행진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 원로원에 돌아온 마리우스에게 군중의 관심을 뺏기자 기분이 나빠진다.
  술라는 두번째 부인인 아일리아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죽은 스카우루스의 부인인 달마티카와 재혼한다.

 

제 8 장

  로마와 이탈리아가 내전에 빠져 있는 한편으로는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왕에 의해 국왕이 폐위된 비티니아와 카파도키아에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로마 위원들이 파견되었다. 로마가 개입하자 미트리다테스 왕은 철수하였으나 로마 위원들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비티니아를 꾀어 폰토스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였다. 미트리다테스 왕은 마침내 로마와의 전쟁을 치룰 것을 마음먹고 소아시아에 있는 로마인 모두를 학살함으로써 전쟁에 응한다. 미트리다테스는 아테네 출신의 철학자 아리스티온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이 전쟁에 같이 참여하게 만들었다.

 

제 9 장

  아시아에서 로마인들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로마는 바로 전쟁을 위한 논의에 들어간다. 수석 집정관 술라는 재정을 들먹이며 신중론을 이야기했으나 마리우스는 일단 전쟁을 시작하면 돈은 어떻게든 마련된다며 자기에게 지휘권을 달라고 한다. 아시아의 학살 소식은 원칙주의 보수파 중 하나였던 술피키우스에게 심각하게 들렸다. 미트리다테스는 학살에서 로마인과 이탈리아인들을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차피 똑같이 로마인으로 보이는데, 우리들은 여태껏 무엇을 위해 내전을 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술피키우스는 그동안의 관념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술피키우스는 원로원 의원들을 공격하여 자격을 박탈하여 원로원을 무력화시키는 법을 제안하고 폰토스와의 전쟁 지휘권을 마리우스에게 주는 법안도 제안한다.
  술라는 캄파니아에 주둔 중인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한다. 마리우스와 술피키우스는 해방 노예들과 군중들을 모아 대적하려고 하나 잘 훈련된 로마군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마리우스/술피키우스 일행은 로마를 탈출하여 아프리카로 도망하나 술피키우스는 일행에 합류하기 전에 잡혀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술라는 로마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아시아로 출정을 떠난다.

 

제 10 장

  마리우스는 여러 도시들을 거쳐 몸을 피신하는데 중간중간 신변이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도시 사람들은 여전히 든든하게 마리우스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마음 편히 여행할 수 있었다.
  술라의 뒤를 이어 집정관이 된 사람은 옥타비우스와 킨나였다. 킨나는 술라가 원정간 틈을 타, 그가 만든 조치들을 무력화하는 법을 추진하여 옥타비우스와 반목한다. 평민회가 열리던 날 옥타비우스는 퇴역 군인들을 고용하여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다. 킨나는 다행이 목숨을 건지지만, 로마로부터 추방되어 놀라로 도피한다.
  놀라에 있는 군대를 접수한 킨나와 세르토리우스는 마침 마리우스도 군대를 만들어 로마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마리우스를 오랫동안 보좌했던 세르토리우스는 마리우스를 만나 후속 계획에 대해 의논을 하지만, 그는 마리우스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챘다. 마리우스는 늙었고 원한이 단단히 맺혔고 정신력이 무너져 자기 자신이 기필코 일곱번째 집정관이 될거라는 생각에 갖혀 있었다.
  킨나는 마리우스와 연합하여 로마에 남아 있는 의원들과 협상을 한다. 협상은 잘 마무리되고 킨나와 마리우스는 로마로 입성한다. 킨나의 군대는 옥타비우스를 죽이고 킨나와 마리우스는 새해를 맞아 집정관에 선출된다. 마리우스는 드디어 7번째로 집정관에 당선된 것이다. 마리우스가 집정관에 당선되자 그의 군대는 로마를 마음껏 유린하기 시작한다. 평소 맘에 들지 않던 사람들을 죽이고 이집 저집에서 강도짓을 하였다.

  마리우스를 향한 예언은 실현되었으나 마지막 문장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카이사르의 후예가 마리우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예언을 참을 수가 없었던 마리우스는 어린 카이사르가 아직 나이가 되지도 않았는데 유피테르 대제관으로 만들어 버린다. 유피테르 대제관은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여러 제약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절대로 군인이 되거나 집정관이 될 수도 없었다. 총명한 카이사르는 고모부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큰 증오를 갖게 된다.

  마지막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새로운 집정관이 되고 13일째, 마리우스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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